내 이야기
어릴 적 탐험의 즐거움은 평생 다시 느낄 수 없을지 모른다
딸아이에게 게임 공략을 알려주려다 멈춘 날, 글자를 읽지 못한 채 게임 세계를 헤매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아는 것이 많아진 뒤에는 왜 게임을 처음 만났을 때의 탐험 감각이 달라지는지, 한 아버지이자 게이머의 경험으로 남긴다.
그때의 즐거움은 실패를 피하는 데 있지 않았다. 무엇이 가능한지 모르기에 모든 곳을 직접 가봐야 했고, 그 막막함까지 탐험의 일부였다.
다음에 게임이나 낯선 일을 시작할 때, 정답을 찾기 전에 조금 더 오래 직접 헤매 볼 여지가 있는지 생각해 본다.
나에게는 열 살짜리 딸이 있다.
나는 게임기를 포함한 여러 장비를 아이에게 제공하는 데 망설임이 적은 편이다. 네 살 때부터 개인용 닌텐도와 태블릿을 사줬을 정도다. 최근에는 할 수 있는 일이 부쩍 늘었다. 집 TV에 닌텐도를 연결하고, 혼자 게임을 즐긴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가끔 답답함이 올라온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무엇을 먼저 해야 하는지, 이건 몇 번만 하면 되는지 나는 대충 안다. 예전에 같은 종류의 게임에서 시간을 많이 썼으니까. 공략 몇 개가 머릿속을 스치고, 결국 나는 말을 꺼낸다.
“이건 이렇게 몇 번만 하면 돼.”
“이거 하려면 저것부터 해야 해.”
두세 가지를 설명하던 날이었다. 문득 입을 닫았다.
이 공략을 떠드는 나는, 이 게임을 아이처럼 재미있게 즐겼던가.
글자를 읽을 수 없던 게임
어릴 때 했던 게임을 떠올리면 지금의 기준으로는 말도 안 될 만큼 실패를 많이 했다. 아직도 기억나는 것은 초등학생 때 즐겼던 포켓몬스터다. 한국어판이 발매되지 않았고, 나는 영어를 능숙하게 읽을 나이도 아니었다. 영문판조차 익숙하지 않던 시절의 이야기다.
아마 모든 것을 알려주고 시작했어도 초등학생에게는 어려운 게임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한 글자도 읽을 수 없는 환경에서 이미지만 보고 게임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이상하다.
누군가 무엇을 해오라고 말해도, 그 미션을 읽을 수가 없다. 그러면 모든 곳을 돌아다닌다. 길이 막히면 다른 길을 찾는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장소에 몇 번이나 다시 가 본다. 진행되는 곳을 하나 찾기 위해 세계를 전부 훑는다.
상상이 되는가. 나는 지금의 나로는 잘 상상되지 않는다.
그때 나는 아마 수없이 실패했을 것이다. 잘못된 길로 갔고, 같은 길을 반복해서 걸었고, 우연히 답을 찾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실패가 괴로웠던 기억보다, 세상이 아주 넓었던 기억이 먼저 남아 있다.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한 칸 더 가 보는 일이 모험이었다.
공략을 아는 사람이 된 뒤
지금도 나는 재미있는 게임을 하고 싶어 한다. 실제로 하는 게임도 있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해소되지 않는 갈증이 있다.
딸아이의 게임을 바라보다가, 내가 찾는 것이 게임 하나가 아니라 그때의 감각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모르는 세계 앞에 서 있던 감각. 정답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일단 이쪽으로 가 보는 감각. 실패해도 다음에 무엇을 해 볼지가 저절로 생기던 감각.
하지만 그 즐거움을 다시 느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이유를 적어 보려고 여러 번 노력했다. 시간도 없어서, 책임이 많아서, 게임이 너무 친절해져서, 인터넷에 모든 답이 있어서. 이유는 많다. 그런데 적다 보면 전부 변명처럼 느껴진다. 변명이라는 것을 안다고 해서 걷어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어쩌면 어린 시절의 탐험은 게임의 구조만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 시절의 내가 있었고, 세상을 모르는 방식이 있었고, 실패해도 잃을 것이 많지 않은 시간이 있었다. 지금의 나는 너무 많은 길을 미리 알고, 모르는 길 앞에서도 먼저 검색창을 연다.
그래서 아이에게 공략을 알려주려던 날, 나는 말수를 줄이기로 했다. 아이가 막히는 모습을 보는 것이 답답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래도 그 답답함의 반대편에서만 얻을 수 있는 무언가가 있을 것 같았다.
아마 그때의 즐거움은 다시 느낄 수 없을지 모른다.
그래도 나는 계속 찾아 헤맬 것이다.